[정보] 집단지성을 연결하다 - ‹CONNECT, BTS› 프로젝트 기획 후기 (예술경영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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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집단지성을 연결하다 - ‹CONNECT, BTS› 프로젝트 기획 후기 (예술경영지원센터)

전시 기획에 있어 집단지성은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근본적으로 전시 기획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창작 행위이기 때문에 공감할 만한 매력적인 어젠다 없이 큐레이팅 협업은 불가능하다. 크게는 시대 가치에 대한 공감에서 전시 방법론까지, 작게는 작가에서 작품 선정까지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평소 큐레이터들이 어떤 주제로 고민하고 있는지, 어떤 작가들이 어떤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는지 안테나를 켜고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협업이 필요한 순간 협업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맷 데이먼의 화성 생존기를 다룬 영화 ‘마션’에서 시간은 치명적인 요소이다. 시간이란 한계 상황이 산소와 식량을 갉아먹으며 생존 조건을 희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주인공은 치열하게 ‘어떻게 산소를 생산할 것인지?’, ‘어떻게 감자를 키울 것인지?’, ‘물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그리고 ‘지구와 화성 사이의 시차를 극복해 어떻게 메시지를 보낼 것인지?’ 매 순간 생존을 위한 판단에 내몰린다. 5개 도시 22명의 예술가들을 연결하는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영화 속 화성 생존기와 비슷했다. 런던-베를린-서울-부에노스아이레스-뉴욕까지 5개 도시의 시간대를 관통해 낮은 밤이 되고, 밤은 낮이 되었다. 단체 채팅방은 매일 새벽까지 진행된 콘퍼런스콜 일정을 잡기 위해 24시간 대기 모드를 유지했다. 서로 다른 제도, 관행, 스케줄, 해석이 충돌해 언제든 돌발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5개의 제도적 중력이 다른 도시를 관통하는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하기에 7개월은 현실적인 타임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누구도 프로젝트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바로 방탄소년단과의 협업이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팬덤인 아미(ARMY)가 보여준 글로벌 연대의 긍정 메시지가 만들어낸 전 지구적인 문화현상과 현대미술이 만나서 어떤 시너지를 낼지 오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양성에 대한 긍정’과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존재하는 작은 것들에 대한 소망’ 등 BTS가 추구해 온 철학적 가치 역시 현대미술의 오랜 관심사로 작가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과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산업이 근원적으로는 예술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은 서로 다른 5개의 유니버스를 오가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독일 미술관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와 영국 미술관 서펜타인 갤러리의 행정이 다르고, 서울 DDP의 전시 공간 조성 가이드와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의 퍼블릭 아트 조항은 한국어와 영어의 격차만큼이나 제각각이다. 테크놀로지 기반의 작가와 퍼포먼스 작가들의 요구 사항이 다르고, 비물질적인 경험을 만드는 작가는 특정 브랜드의 재료 선정부터 기술감독 파견까지 디테일을 챙긴다. 결국 이 모든 다름을 연결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하나의 프로젝트로 완성하기 위해 각 도시별, 기관별, 작가별 서로 다른 제도와 행정 원칙을 사전에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처럼 서로 다른 국가, 도시, 기관을 엮어내는 전시 기획에 있어서 계약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특히 문화와 제도가 다른 다양한 배경의 큐레이터, 작가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계약서는 사고 없이 무사히 전시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설계도 역할을 한다. 그래서 초기 석 달간은 각 미술관과 스튜디오별로 각각의 계약서를 체결하기 위한 협의에 하루 일정의 대부분을 투자해야 했다. 평소 영국과 미국의 미술관 계약서 작성에 익숙한 터라 표준 계약서를 기반으로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국가, 도시, 미술관, 공원별로 각각 계약서에 담고 싶은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각각의 다른 계약서에 프로젝트 내용을 담아내야 했다. 또한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처럼 미술관 건물 안에서 프로젝트가 발생하는 경우와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처럼 개방된 야외 공간에 작품이 설치되는 경우 계약의 요구 사항은 전적으로 다르다. 독일 미술관인 그로피우스 바우는 사진, 영상 콘텐츠에 대한 미술관 측의 완벽한 저작권과 커미션 통제가 중요해 미술관과의 직접 계약관계 없이는 어떤 사진작가와 영상 촬영 팀의 촬영도 불가능하다. 반면 영국의 미술관인 서펜타인은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질 콘텐츠의 다양한 활용과 확장에 대한 상호 가이드를 철저하게 따지는 매우 세부적인 계약서를 요구한다. 특히 미술관 내부가 아닌 야외에 놓일 작품의 경우 켄싱턴 가든과의 협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예를 들어, 뉴욕 안토니 곰리의 설치작품은 관객들이 체험 도중 넘어지거나 머리를 부딪혀서 발생할 수 있는 소송 금액이 천문학적일 수 있다. 특히 작품 <뉴욕 클리어닝>은 실내에서 설치·관리되었던 작품 규모를 키워 최초로 야외 공원으로 가져온 케이스이기 때문에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를 설득하기 위해서 최소 3가지 안전장치를 약속해야 했다. 첫 번째는 뉴욕의 강풍에 견딜 만한 구조 검증이고, 두 번째는 눈과 비가 얼어붙어 생긴 고드름이 떨어지거나 강풍에 작품이 파손되어 그로 인한 인명 피해 발생 시 누구의 책임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보험이며, 세 번째는 도난과 파손으로부터 작품을 24시간 지켜줄 경비계획까지 준비해 계약서에 담았다.

태양 에너지와 바람에 의해 비행하는 토마스 사라세노의 <에어로센 파차(AerocenePacha)>의 경우 날씨라는 변수에 크게 의존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론칭 날짜를 특정하기 쉽지 않았다. 또한 퍼포먼스 장소이자 해발 3,450 미터에 위치한 살리나스 그란데스 소금사막은 인터넷, 내비게이션은 물론이고 전화기도 터지지 않는, 하늘과 맞닿은 곳이다. 그래서 그만큼 신비롭지만, 가이드 없이는 위험해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도록 전 과정을 담아낸 영화를 만들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가장 큰 (실제 남미에서 가장 큰) 미술관인 CCK에서 상영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CTO(Chief Technology Officer) 벤 비커스와 함께 기획한 제이콥 스틴슨의 작품 <카타르시스>의 확장판 설치 위치를 두고 켄싱턴 가든과 미술관 이사회와의 협의가 길어졌다. 서펜타인 건축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위치와 자하 하디드 디자인의 신축 건물을 사이에 두고 논의한 끝에 후자로 결정이 났다. 서울 전시장인 DDP 역시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인 점, 그리고 날씨에 따른 접근성을 고려한 결과였다. 서펜타인은 ‘디지털 큐레이터’, ‘콘텐츠 총괄’ 등 전문가들이 협의 과정에 합류해 이번 프로젝트에 어떻게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연결시키고 메시지를 개발할 것인지 면밀하게 챙겼다.

20세기 인류의 상처, 베를린 장벽 바로 옆에 위치한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에서는 퍼블릭 아트의 외연을 넓히고, 전체 프로젝트의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해 다수의 퍼포먼스 작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미주 작가들까지, 처음에는 4-5팀의 공연을 기획하기로 하였으나, 프로젝트의 취지를 공감해 참여 의지를 내비친 작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 총 17명의 작가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주요 하이라이트 퍼포먼스 작품들에 등장하는 누드와 신체 주요 부위 노출에 대한 이해가 문화권별로 달라 영상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수위 조절을 하였다.
앤 베로니카 얀센의 <그린, 옐로, 그리고 핑크> 작품은 처음에는 야외 파빌리온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안개가 온도 변화(추위)에 민감하고, 길게 줄을 서게 될 관객들이 추위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DDP 실내 전시장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역설적이게도 실내에 짓게 될 파빌리온의 소재를 선택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톱질, 샌딩, 페인팅까지 모든 공정을 외부에서 제작하고 DDP 전시장에서는 조립만 할 수 있다는 규정으로 인해 페인트칠과 마감처리가 필요 없고, 안개가 새어 나가지 않는 구조 설계가 가능한 폴리카보네이트를 선택해 곡선형 DDP의 건축 구조와 매칭하는 원형 파빌리온을 완성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5개 도시 프로젝트의 콘셉트와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와 방탄소년단의 춤에서 영감을 받아 디지털로 재해석한 강이연 작가의 작품을 함께 병치했다.

이처럼 도시별로 다양한 형식과 장르를 연결시키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는 명확한 비전과 메시지를 상호 간에 오해 없이 전달하는 메신저가 필요하다. 특히 참여 작가 수가 많은 경우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일관된 메시지를 도출하기 쉽지 않다.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여러 층위로 나누어서 상위 레벨인 글로벌 스케일에서 노출할 메시지와 각각의 도시에서 소통해야 하는 도시별 디테일한 메시지를 구분해야 5번의 PR 캠페인이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어 반복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글로벌 홍보 대행사와 각 도시별 로컬 대행사를 각각 선정해 이들과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홍보 대행사는 통합적인 메시지를 위해 각 작가 스튜디오에서 보내온 작가 코멘트의 분량을 줄이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로컬 홍보 대행사에서는 그 반대로 개별 작가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새로운 소스를 얻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예술감독은 해당 미술관의 관장 및 스튜디오의 대표(작가)와 소통해서 최대한 경청한 뒤 메시지 방향을 글로벌 홍보 대행사와 협의하면 글로벌 홍보 대행사에서는 현재 FT, 뉴욕타임스, 가디언, 아트뉴스페이퍼 등 메이저 언론사의 에디터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는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어 선택, 문장, 메시지의 길이를 조율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타이틀이 암시하듯 다른 도시의 활동들을 실제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결시키는 마이크로 사이트의 역할이 컸다. 특히 방탄소년단이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AR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은 이번 프로젝트가 예술을 이해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그 결과 피해야 하는 사례로 표피적인 결합, 즉 디자인적인, 시각적인 공통점을 만들기 위한 접점을 찾는 방식을 멈춰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대신 음악과 미술, 퍼포먼스와 조각,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등 서로 다른 예술 형식과 관점이 어떤 공통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미래 가치를 공유하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연대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고민하였다. 그래서 작가와 방탄소년단의 화상통화 때 서로가 서로의 다양성과 오리지널리티를 인정하고 간섭 대신 서로를 응원하였다. 큐레이터 입장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미술이라는 콘텐츠가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만들어 온, 거대하고 따뜻한 글로벌 연대라는 콘텍스트가 만나 미술의 가치를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음악계를 넘어 글로벌 문화예술계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음악 세계가 어떤 철학적인 고민과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그 폭과 깊이에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4개 국어를 지원하는 자막 서비스까지 고집하는 방탄소년단과 빅히트의 범지구적 배려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 세계 1,000여 개가 넘는 매체에서 커버되는 성과를 이뤘다. 보통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이 성공할 경우 100여 개의 매체에서 커버되는 사례에 비교해 큰 성과이다. 이 같은 결과의 요인은 자국 이기주의, 편가르기식 정책,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역설적 단절, 인류의 지속 가능성 등 이 시대가 처한 여러 사회, 정치, 문화적 문제들을 ‘다양성’과 ‘변두리’라는 예술의 핵심 가치를 통해 다시 ‘연결(CONNECT)’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지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하나의 거대한 문화 현상이 된 방탄소년단의 존재가 컸다.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와 서펜타인 갤러리에서는 미술관을 처음 찾는 다양한 배경의 어린 방문객들의 높은 학습 욕구에 대해서 연일 놀라워했다. 미술에 있어서 공익성의 출발은 그 저변을 넓히는 시도에서 출발하는데, 적어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미술이 전달하고자 노력해온 ‘예술의 가치’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로피우스 바우의 스테파니 로젠탈 관장은 큐레이터 생활 수십 년 동안 처음으로 어린 소녀 관객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고 한다. 경계를 초월해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현대미술이 그동안 스스로의 엘리트 의식과 배타주의라는 우물에 갇혀서 세상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나왔다.

나 혼자서 좋은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 1년에서 2년의 주제 연구가 필요하고, 3개월 이상의 작가 리서치, 3개월 이상의 작가와의 소통, 그리고 실제 전시를 만들기 위해 6개월 이상의 시간을 전시 행정에 온전히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2년, 이상적으로는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의 길이만큼 기획의 밀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7개월 만에 해냈다. 혼자보다는 집단지성이 더 똑똑하다는 전제 아래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성과 역량을 연결한 결과이다. 결국 역사는 혼자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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