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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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8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967시간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긴 수치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근로자들의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보장해주기 위해 올해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확대 시행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던가. 지금의 현대인들은 휴식도 ‘제대로’ 쉬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잠시 쉴 때는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을까. (사)행복공장에서 ‘쉼’에 대한 답을 찾았다.


1.5평의 독방에서‘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다


‘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자에서 쉼(휴, 休)은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형상을 띈다. 즉 손에 잡힌 일을 멈추고 나무에 기대어 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낀다. 쉴 때도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일 무엇인가를 반드시 해야 할 것만 같다. 2009년에 (사)행복공장을 설립한 후, 공장장 직함으로 일하고 있는 권용석 변호사와 연극인 노지향 부부를 만났다.


“10년 동안 검사로 근무하며 제대로 쉬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잠깐이라도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직업상 오가던 교도소가 눈에 들어왔고, 딱 일주일만 교도소 독방에 머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용석 공장장은 이후 검사직을 그만두고 가까운 사람들과 ‘행복공장’이라는 비영리사단법인과 교도소 독방처럼 생긴 수련원을 만들었다.


1.5평 독방에 머물며 사람들은 어떤 것을 경험할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독방 안에 있으면서 답답함보다는 오히려 자유와 해방감을 경험한다고 한다고 한다.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일상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곳은 감금이나 독방을 체험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도소 독방’의 모습을 차용하였지만, 핵심은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1.5평 독방은 나 자신을 만나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에 아주 좋은 공간입니다. 이곳에 있다 보면 처음에는 좁게 느껴지던 공간이 점점 커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고도 합니다.”


각자의 힘듦이 다른 만큼각자의 쉼도 달라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직급이 높든 낮든, 이런 외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힘듦을 겪고 있으며, 그 형태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각자 쉬어야 하는 이유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행복공장은 2017년에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이라는 성찰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청소년들이 위 프로그램에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중학교 2학년생이 참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중학생이 본인 의사로 신청한 것인지, 과연 이곳에 와서 제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몰라서 부모님에게 연락하여 확인한 후 참가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 “제가 품고 있던 인생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풀지는 못했지만, 꽤 좋은 시간이었다.”라고 너무나도 어른스럽게 말하여 다들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그 학생이 계기가 되어 청소년들을 위한 성찰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행복공장은, 입시와 취업 준비 등으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청소년들을 위한 성찰 프로그램으로 ‘선배에게 길을 묻다. 나에게 길을 묻다’라고 하는 2박 3일 캠프를 만들어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캠프 진행을 맡고 있는 노지향 공장장은 “저희 캠프에 한 번 참여했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청소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진로와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조금씩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어진 현실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법도 배우는 것 같구요.”라고 말했다.


이런 균형은 청년들에게도 필요한 과제이다. 취업, 고용불안 등에서 오는 경제적 문제가 다양한 사회 문제와 결부되면서 청년들이 받는 외부 자극은 점차 강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 불안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는 욕구 또한 강하다. 행복공장은 이런 청년들을 위한 캠프도 진행하고 있다.


“지금 청년들은 똑똑하고, 능력도 뛰어나지만, 자신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캠프에는,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직역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인생 선배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있고, 몸을 움직이며 하는 놀이와 연극 워크숍, 명상,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 등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하면서 올 때보다 훨씬 성숙해지고 당당해져서 돌아갑니다.”


노지향 공장장에게는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청년이 있다. 몇 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던 청년이 친구 소개로 행복공장의 캠프에 참여하였다. 캠프 내내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던 그 청년은 캠프를 마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취직을 하고,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현실이 많이 힘든데 비해,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힘을 얻고, 단단해지면 좋겠습니다.”라고 권용석 공장장은 말한다.


치유와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행복공장의 연극 프로그램


행복공장은 치유와 성찰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행복공장의 연극은 우리가 알던 연극과는 사뭇 다르다. 연기자의 전유물이었던 무대를 해방시켜 관객과 적극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연극수업 참가자들의 이야기로 만든 연극을, 참가자들이 배우가 되어 직접 공연하기도 하고,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전문배우들이 즉석에서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하는 즉흥연극 형식의 공연도 한다. 이와 같은 연극들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하다.


행복공장은 그동안 기지촌할머니, 외국인노동자, 재소자, 소년원생들과 연극워크숍을 진행하여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했다. 기지촌 할머니들과의 연극은 어땠을까? “몇 년 전 기지촌 할머니들과 연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거나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몇 개월 동안 매주 만나다 보니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야기들을 모아 한 편의 연극을 만들었는데, 자신들의 이야기로 만든 연극이다 보니 연기나 대사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공연적으로도 매우 훌륭했지요.”


그러나 할머니들을 무대 위에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진행한 연극수업이 끝나고 나서 아는 분들 몇 분만 초청해서 공연을 하자고 했더니 할머니들이 펄쩍 뛰었습니다. 지금까지 해놓은 게 아깝지 않냐고 겨우겨우 설득해서, 처음에는 평택에 있는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했는데 관객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할머니들이 확 달라졌어요. 그 다음에는 더 큰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나중에는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작으로 초청받아 5백 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공연했는데, 반응이 엄청났습니다.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에 출품하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행복공장이 진행하는 대부분의 성찰 프로그램에는 짧더라도 연극이 꼭 들어간다. 연극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치유가 일어나고,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노지향 공장장은 가족 캠프를 진행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요즘엔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면서도 잘 몰랐던 상대방을 연극 프로그램 속에서 잘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부모, 자식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경험도 하고, 또 캠프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합니다.”


행복공장의 변화하는 모습,온라인 공연을 통해나눔과 성찰의 중심에 다시 서다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성찰과 치유를 안겨줬던 행복공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오프라인 모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행복공장은 관객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극장’을 온라인을 병행하여 진행하고 있다. 공연장 입장 관객을 최소화하고, 그 대신 관객들을 온라인으로 접속하게 해서 온·오프라인 관객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연극을 만들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주로 일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청소년 캠프를 쉼터 청소년이나 중도입국 청소년, 새터민 청소년 등으로 확대하여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권용석 공장장은 “지금 누구보다 쉼과 성찰이 필요한 사람은 우리 사회의 리더들입니다. 우리 사회 리더들이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욕망만을 추구하다 보면, 자신들도 불행해질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보다 우리 사회에 훨씬 더 큰 폐해를 끼치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였다. ‘쉼’은 나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수많은 자극에 무뎌진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행복공장에서 제안하는 ‘쉼’에 대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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