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코로나 재난, 사회적 고립과 정신건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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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코로나 재난, 사회적 고립과 정신건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일상이 바뀌고 있다. 2월 중순, 대구 신천지 집단감염 이후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가운데, 정부는 3월 22일부터 5월 5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 기간을 설정하고 전 국민의 동참을 호소하였다. 어린이날이 지나고 확진세가 주춤하면서는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재차 확진자가 증가한 까닭에, 언제든 코로나19의 확산이 급증할 수 있다는 걱정을 떨쳐내기 힘든 상황이다. 백신이나 치료제는 언제쯤 나올지, 사람들과 거리두기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많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사회관계의 단절과 심리적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청소년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정신건강 실태를 파악하고자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코로나19로 힘들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항목은 청소년의 경우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72%)’이라는 사실이다. 또 청소년의 60%, 보호자의 83%는 불안과 걱정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청소년의 경우 28%는 분노를 경험했다고 응답하여 보호자가 분노를 경험한 비율인 15%의 거의 2배에 이르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한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KSTSS)는 국민의 19%가 중등도 이상의 불안, 17.5%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 위험군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전국 단위 조사인 2018년 지역사회건강조사를 통해서 보고된 전 국민의 우울 수준과 비교해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대구, 성별로는 여성, 연령대로는 30대에서 우울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람들은 일상생활 중 직업이나 가족생활 대비 사회생활과 여가활동 방해를 크게 받는다고 응답하였다.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났지만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코로나19 대응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거리 두기 명칭이 바뀌어도, 사람들과 만남을 자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힘든 시기다. 이처럼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무슨 뜻이며,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고립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사회적 거리 두기가힘든 이유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기 힘든 것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사회, 심리 분야 교과서에 고전으로 등장하는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식욕, 수면과 같은 생리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다음으로 안전 - 사회적 소속 - 존경 - 자아실현 순으로 높은 단계의 욕구를 추구한다. 그리고 매슬로우는 인간이 낮은 단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려는 동기를 가진다고 보았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것처럼 들리는 이 생각에 사회심리학자 매튜 리버만(Matthew Lieberman)은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저서 『사회적 뇌』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욕구는 생리적 욕구만큼이나, 심지어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태어나면서 추구하는 사회적 연결


우선 다른 생명체, 최소한 포유류와 비교해봐도 인간은 태어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걷기는커녕 먹는 것조차 부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아가 무사히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하려면,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부모에게 울음 등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는 학습된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고, 사회적 연결에 대한 욕구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본 신경망과 사회인지


사람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신경망을 기본 신경망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사람의 뇌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회인지’ 부위가 활성화된다. 즉 우리가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뇌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며 바쁘게 일하는데, 많은 시간을 기본 상태로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일이 생존과 적응에 필수적임을 암시한다.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를 두뇌에서 찾는 경우는 흔하다. 그렇지만 사람의 뇌는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체중에서 뇌의 신피질(neocortex) 영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생명체 종마다 형성하는 집단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사회적 뇌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는 인간이 다른 종과 달리 특별한 뇌를 가지게 된 것은 크고 복잡한 사회집단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는 서로를 돕는 이타적 행동, 다른 사람 속이기, 연합 결성하기 같은 사회적 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1)이 필수적이다. 던바의 가설이 시사하는 것은 인류의 뇌의 진화가 자연환경에 대처하는 능력보다는 이러한 사회적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의 의미,영향과 대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자 하는 욕구가 근본적인 만큼,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더군다나 현재까지 대부분의 연구결과들은 나쁜 영향을 준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고립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친구나 가족과 자주 통화하는 사람은 고립된 것일까? 아니면 매일 마트에 가서 장을 보지만, 하루에 한 사람과도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 고립된 것일까? 혼자 살지만, 매일 친구를 만나면 고립되지 않는 것일까? 혹은 직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집에 오면 가족이 있지만, 어쩐지 외로움을 떨쳐낼 수 없다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것일까?


혼자 살기(living alone) vs 혼자 되기(being alone)


거주 형태에 있어서 최근 두드러지는 경향 중 하나는 1인 가구,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에서 1인 가구의 증가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삶의 방식이나 소비 행태를 급격히 바꾸고 있지만, 사실 1인 가구는 예외적인 삶의 형태로 생각되어 왔거나, 특히 건강과 관련된 연구에서는 나쁜 영향을 주는 위험요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예컨대 독거 노인의 경우, 혼자 살면 낙상 위험이 더 높다거나, 혼자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사망률이 더 높다거나, 외로움이나 우울감을 느끼기 더 쉽다거나, 다급히 도움을 필요로 해도 받지 못하거나, 일상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다거나 하는 식이다. 즉 혼자 산다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위험요인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여기에 반대되거나 결이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보건학자 리사 버크만(Lisa Berkman)은 노년기 치매와 인지능력 저하에 위험이 되는 것은 혼자 살기가 아니라, 혼자 되기라고 주장한다. 혼자 살더라도 꾸준히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여러 사회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혼자 살기의 불리한 측면이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는 혼자 살기, 사회적 고립, 외로움의 경험, 이 세 가지는 서로 구분되는 것이며, 한 가지를 경험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머지 상태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혼자 사는 경우 사회적으로도 고립될 가능성이 증가하는 방식으로, 한 상태가 다른 상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객관적 고립 vs 주관적 고립


사회적 고립은 교류하는 사람의 수나 만남의 횟수가 적은 것처럼 객관적인 측면과 어딘가 겉도는 듯하면서 외롭거나 고독감을 느끼는 것처럼 개인이 인식하는 주관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미국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객관적, 주관적 고립이 모두 신체건강과 부정적으로 관련되는 반면, 정신건강과 관련해서는 주관적 고립이 객관적 고립보다 더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특히 외로움과 같은 주관적 고립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이 꾸준히 밝혀졌다. 사회적 고립이 사망률이나 심뇌혈관 질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연구에서는, 고립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주관적 안녕(well-being)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가하였다. 위험한 정도 역시 비만, 신체활동, 정신건강, 면역, 의료 접근성 등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이 많이 규명된 다른 위험요인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고립 대처하기


코로나19 상황에서 겪는 고립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금의 코로나19 상황과 유사하게 과거에 격리를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된 바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강제로 떨어지는 것, 자유의 상실, 질병의 향후 경과에 대한 불확실성, 지루함 등이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분노처럼 부정적 감정이 계속해서 생겨날 수 있고 음주에 의존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자살을 하는 경우까지도 발생한다. 그나마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여러 국가에서 겪은 것처럼 전국 단위의 봉쇄(lockdown)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게 나은 점이 있다. 여전히 많은 사회활동이 제한되지만, 자가격리자와 확진자를 제외하면 대체로 외출이 불가능하지는 않고, 혼자 살더라도 제한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혼자 되기의 위험을 피할 여지도 있다. 다만 앞서 인용한 두 조사에서 드러나듯 객관적, 주관적 고립 역시 일정 수준 증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울, 불안, 분노를 비롯한 심리적, 정신적 어려움도 상당히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전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활동의 제한은 불가피하다. 어떠한 형태이든 사회적 고립도 부분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각 개인이 사회적 고립에 ‘사회적으로’ 대처하는 방안도 존재한다. 사회적 고립에서 겪을 상황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 특히 구체적인 시간과 의도, 목적을 정해 생활을 계획하면 고립에 대처하기가 더 수월하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전화나 영상 통화, 여러 소셜미디어를 이용해서 원격으로 사회적 관계에 참여하는 것 역시 권고 사항이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원격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반대로 가까운 사람 중 혼자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일부러 안부 연락이라도 해보는 게 어떨까?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 고립된 느낌을 줄일 수만 있다면, 어떤 연락이든 충분하다.


맺음말


코로나19 사태는 먼 과거의 스페인 독감이나 흑사병과 비교되는 전 세계적 수준의 전염성 질병이다. 너무 먼 과거의 전염병 대신, 가까운 과거의 태풍, 폭염, 지진과 같은 재난상황과 비교하더라도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거대한 재앙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누구나 때로는 무기력하고 불안하며 우울할 수 있다. 너무나도 큰 고립감과 외로움에 힘겨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라도 대응할 방법이 있다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브리핑2)에서, 각 개인의 생활수칙을 ‘사회적 거리 두기’ 대신 ‘물리적(physical) 거리 두기’나 ‘멀리서 교류하기(distant socializing)’ 등으로 다르게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질병 전염을 피하기 위해서 물리적 거리는 유지해야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여러 방법으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반 케르크호베(Van Kerkhove) 신종질병팀장은 이런 위기상황일수록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적 접촉을 유지하고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폭염과 그로 인한 사망자의 급증을 연구한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지역 간 사망자 차이가 컸던 이유를 밝히고자 하였다. 폭염 상황에서 쉽게 예측할 수 있었던 위험요인으로 인종(흑인), 경제수준에 따른 냉방기기 유무 같은 요인들은 미국 질병통제센터 조사관들 역시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하게 흑인이 많은 지역이라고 해도, 어느 지역은 사망자가 급증한 반면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하여 클라이넨버그는 공동체와 사회적 연결에 보다 주목하여 다음3)과 같이 주장했다.


… … 흑인이거나 가난해서 더위에 취약했던 게 아니라, 공동체가 방치한 게 원인이었다

.… … 이웃과도 서로 알고 지냈다. 반상회와 교회 활동에 참여했다.

그곳의 주민들은 폭염 기간에 누가 혼자 살고, 누가 나이 들었고, 누가 아픈지 알았다.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고, 다른 집 문을 두드려보도록 서로 격려했다.

폭염이 특별한 사건이어서가 아니었다. 날씨가 심상치 않으면 늘 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려는 노력만큼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연결을 통해, 모두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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