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개] 물려받은 돼지 600마리 이젠 1만2000마리 됐죠 (매일경제)
| 송일환 금강축산 대표, 양돈 마이스터 토론회서 소회 밝혀
|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 온라인 교육` 양돈업계서 큰 관심
| 전국 13명 마이스터 중 7명이 참여...김동연 전 부총리가 고문
| 주최측, 전체 양돈농가 위해 1년간 교육내용 공개하기로 결정
코로나19로 인해 외국과의 직접 교류가 사실상 단절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외국과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7인의 `양돈 마이스터`들이다.
양돈 마이스터는 영농경력 15년 이상으로 농업마이스터대학을 졸업하고 각종 시험과 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에 지정되는 양돈의 명인들이다. 양돈 마이스터는 국내에 단 13명 뿐이다. 이들 중 7명이 작년 6월부터 세계적인 농업대학인 네덜란드 와게닝겐 대학 현지와 연결하는 온라인 영상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와게닝겐 마스터 클래스`로 매월 한 차례씩 네덜란드 최고 양돈 전문가들로부터 양돈 사양기술과 질병예방, 친환경 축산, 동물복지 등을 주제로 교육을 받고 있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와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전 농촌경제연구원장) 주도로 만들어진 이 교육 과정은 김동연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전 경제부총리)이 고문을 맡으면서 더욱 알려지게 됐다. 주최 측은 이번 교육과정이 끝나는 대로 그 내용을 전체 양돈 농가들을 위해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9일 농협중앙회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진행된 4월 과정에선 돼지 육종과 번식을 주제로 하는 네덜란드 현지 교육에 앞서 양돈 마이스터들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의 교육 과정을 평가하고 양돈업의 미래에 대해 조망하는 시간이었다. 토론회엔 김문조 더불어행복한농장 대표와 송일환 금강축산 대표, 엄문일 설봉팜 대표, 이재국 시리농장 대표, 정해옥 동화농장 대표, 최낙건 피그월드 대표 등 양돈 마이스터들과 김동연 이사장, 김창길 교수가 참여했다. 특별히 김태환 농협축산경제 대표와 강호진 주한네덜란드대사관 농무관도 참석했다. 민승규 교수는 사회를 맡았다. 토론회 내용을 정리한다.
민승규 교수=자기 자신에게 양돈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송일환 대표=양돈은 저의 인생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돼지우리에서 똥을 치우면서 시작한 양돈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돼지가 600두였는데 지금은 1만2000두가 됐습니다. 이젠 아들이 가업을 잇기 위해 축산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양돈을 통해 가족이 유지되고 있는 셈입니다. 앞으로는 이웃과 더불어 잘 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 과정에 두 분이 아들과 함께 참여하셨는데요. 아들에게 어떤 농장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엄문일 대표=사실 아들이 나처럼 농업에 종사할 거라고는 생각을 안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지금은 함께 농장을 운영하게 된 지가 어느덧 7년이 됐습니다. 더구나 그 사이 집안으로 들어온 며느리까지 적극적으로 농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 내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손자까지 태어나다보니 농장이 3세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이에 맞춰서 지금 축사를 5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도록 리모델링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가족농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재국 대표=아들이 농장 일에 참여한 지가 얼마 안됐습니다. 오늘 모처럼 아들과 함께 했는데요. 차근차근 아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가지 꿈이 있다면 주변과 상생할 수 있는 농장으로 키워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가까이는 주변 농가나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농장을, 멀리는 좋은 것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농장을 물려주는 것이 아들에게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창조적으로 바꿔 나가려면 호기심을 가져야 하고 불편함도 느껴야 한다고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계신지요.
▶김문조 대표=올해로 돼지 관련 공부와 일을 시작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지금 동물복지형 농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관련 지식이 많아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돼지에게 너희들의 불편함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돼지가 더 편한할까 고민한 것이 동물복지로 이어졌습니다. 이제서야 조금 깨닫는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봐야지만 소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조금 더 동물복지 완성도를 높여 한국에도 꽤 괜찮은 돼지농장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낙건 대표=요즘 양돈 현장의 최대 고충은 구인난입니다.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을 찾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돼지 무게를 재는 수고를 덜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 무게가 계산되는 스마트 전자 저울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주변 농가에서 지금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3년 전부터 카메라를 이용해 돼지의 행동과 온도 변화 등을 파악하고 그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돼지 행동변화를 통해 질환 등 문제를 빨리 파악해 약물을 바로 투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개발이 완료되면 양돈업계의 구인난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해옥 대표=처음에 양돈을 시작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최고가 될 수 있을 지,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해질 수 있을 지 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주변 사람들의 우리 농장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바꿀 수 있을 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자면 농장을 조금 더 깨끗하게, 조금 더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돈산업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양돈업에 대한 이미지 쇄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농민 스스로 나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기보다는 더불어 같이 잘 사는 농촌이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농장을 운영해 나갈 생각입니다.
김태환 농협축산경제 대표님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김태환 대표=요즘 고민하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사료 가격 상승입니다. 기후변화 문제가 상시화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료 가격이 계속 오르다보면 양돈업을 비롯한 국내 축산업이 갈수록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 큽니다. 결국은 농가 경쟁력을 키워 돼지 마리당 출하두수(MSY)를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탄소제로 문제입니다.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어떻게 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방안을 찾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양돈 마이스터 분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중지를 모은다면 축산업이 처하고 있는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번 교육과정에 참여하면서 다른 양돈농가에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김문조 대표=양돈 농가들이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공유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마인드웨어까지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양돈 농가들이 마인드웨어까지 공유할 수 있다면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문일 대표=한돈 농가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양돈 농가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고 단합하지 않으면 양돈업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고기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번 교육과정이 한돈인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과정의 고문을 맡고 계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동연 전 부총리=양돈 마이스터들이 참여하는 이번 교육과정에 고문으로 참여한 덕분에 제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양돈인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창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 엄문일 대표의 아들인 엄가영 군과 이재국 대표의 아들인 이정호 군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청년 농부들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작년 경북 예천에서 만난 청년 사과농부의 말이 떠오릅니다. 한국인들의 연간 1인당 사과 소비량을 어떻게 하면 13개에서 15개로 늘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과수원 안에서 담배도 피지 말고, 남 욕도 하지 맙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과가 소비자에게 가야 더 좋지 않겠습니까" 농업 혁신의 시작은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네덜란드가 새로운 100년 농정의 비전으로 순환농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이 있을까요.
▶강호진 농무관=농업 수출액이 세계 2위인 농업강국 네덜란드에서도 불과 얼마전까지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농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농가 소득이 도시 소득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농민들의 행복지수가 낮아지고 토지는 황폐화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농업이 되게 하려면 생산은 같아도 비료나 사료의 투입량은 줄이고, 또 농업 부산물은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성이 나오게 됐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관심이 높지 않았던 동물복지가 최근 들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계농과 관련해서 네덜란드에서 재밌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농장 규모를 넓히면 50% 이상의 자제가 후계농이 되고 싶어하고, 규모를 넓히지 못한 농가에서는 10%만이 후계자가 되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농장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으시면 계속 넓혀 가시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의 교장선생님을 맡아주신 김창길 교수님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창길 교수=한국농업교육학회로부터 이번 교육 과정의 내용과 성과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와게닝겐 마스터 클래스가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양돈산업이 계속 성장해 가려면 양돈인들이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양돈인을 발굴해 시상함으로써 양돈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이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