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펭수 열풍을 가능하게 한 문화-산업 트렌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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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펭수 열풍을 가능하게 한 문화-산업 트렌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1. 펭수 열풍을 만들어낸, 문화 산업의 저변을 살피다 


2019년 하반기를 강타한 ‘펭수’ 열풍은 2020년에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의 타종을 펭수가 맡은 것은 상징적이다. 펭수 굿즈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펭수 영상을 돌려보며 새롭게 ‘입덕’하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는다. 펭수의 상표권을 타인이 먼저 등록한 사건에 대한 설명을 담은 특허청의 유튜브 영상은 21만 조회수를 넘어섰다(해당 채널의 일반적인 조회수가 수백 건인 것에 비교하면, 펭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수준을 상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상표 분쟁은 앞으로 벌어질 펭수 연관 ‘산업’에 대한 대중의 기대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에서 굿즈, 각종 컬래버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펭수의 활동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갑작스러운 펭수 열풍은 여러가지 ‘설명’을 요구하는 일종의 ‘현상’이다. 많은 글에서 펭수의 거침없는 언행이 주는 쾌감, ‘펭수는 그냥 펭수’라는 말로 대표되는 세계관의 구축 등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펭수가 유난히 ‘잘 해낸 점’들에 대해선 이미 충분히 많은 설득력 있는 설명이 나와 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선 어떤 토대 위에서 이러한 성공의 지점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에 더 주목해보고자 한다. 


즉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펭수가 소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펭수는 지난 5년 간, 한국의 문화 산업에서 다양한 차원으로 성숙해온 콘텐츠IP 생태계의 토대 위에 우뚝 서 있다. 펭수의 성공 사례를 계기로 현재 한국의 문화 산업의 저변에 흐르는 문화적, 산업적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더 늘어날 또 다른 ‘펭수’들의 가능성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펭수 열풍이 보여주는 문화-산업 트렌드 (1): 가면놀이, 디지털 정체성, 세계관 


펭수가 EBS와 유튜브를 벗어나 타 방송으로 진출하면서 기존 방송인들에게 가장 낯설게 받아들여진 부분은 바로 ‘펭수는 펭수다’라는 표현이었다. 일반적으로 펭수와 같은 캐릭터는 ‘인형탈을 쓴’ 인간 연기자의 행위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렇기에 펭수의 인기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펭수를 ‘연기’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펭수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펭수라는 캐릭터에 머무르는 전략을 취하고, 팬들이 그러한 선택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펭수를 캐릭터 그 자체로 소비하는 것이다. 


여기에 미묘한 이중성이 작동한다. 분석을 위해 세계관 감수성을 잠시 무시하자면, 펭수를 연기하는 연기자의 실존과 펭수라는 ‘가면’을 뒤집어쓴 캐릭터는 때로는 융합하며 때로는 분열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정체성의 분열을 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중적 정체성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면은 다중 정체성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가면의 매력은 이미 오랜 역사성을 갖는 일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한 개인에게 통합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정체성의 복합성을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분리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허용되는 문화가 보다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해볼만 하다. 복면가왕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글로벌 시장에서 포맷으로 판매되며 흥행하고 있는 현상과 펭수 현상의 연결성을 고민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소셜 미디어의 발전은 통합될 것으로 기대되나 실제론 복합성을 갖는 인간의 정체성을 구분하여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다수의 대중에게 허락해주었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나와 실제의 나의 차이를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환경이 열린 것이다.  


이러한 틈을 타고, 소위 ‘부계(부계정, 부캐(부캐릭터))’란 용어가 디지털 문화의 한 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중의 소셜 계정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의 다양한 차원을 구분하여 관리하는 사례들이 일반인들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에게 기대되는 정체성과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 간의 충돌을 충분히 관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오프라인-일상’에 비해, 이를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캐’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사례가 바로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이라고 할 수 있다. 유재석이라는 ‘본캐’와 ‘유산슬’, ‘유고스타’라는 다수의 ‘부캐’를 동시에 관리하며, 그 간극에서 나오는 해프닝을 웃음의 포인트로 삼는 전략인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국민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도 사실상 ‘캐릭터’ 플레이로 받아들여져 왔다. ‘기믹’, ‘캐릭터’라는 개념들은 이미 하위문화의 중요한 용어로 자리잡고 있었다. ‘리얼 예능’의 전성기를 거쳐오면서, 오히려 ‘리얼’은 콘텐츠 내의 캐릭터 구축의 리얼리티의 문제, 즉 리얼리티의 연행의 차원으로 그 의미가 이동해 왔다. 리얼 예능의 위기는 콘텐츠 내부에서 구축된 ‘리얼리티’와 그 외부에 존재하는 인간의 실제가 충돌할 때 찾아왔다. 


‘부캐’라는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주체로 ‘유재석’이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수의 정체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할 수 있으면서도, ‘본캐’의 우발적 드러냄에 따른 세계관의 붕괴 위험이 적은, 가면 쓰지 않은 개인은 현실에 그렇게 많지 않다. 역시나 캐릭터를 ‘연행(perform)’하는 아이돌에게서도 유사한 상황들이 나타난다. 기대되는 정체성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기적으로 조율하고 연합하며 서사를 구축하는 일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셀럽’의 역량이 되어가고 있다. 


이때, 가면과 탈이란 장치는, 이러한 실존과 세계관으로 구축된 ‘리얼리티’의 충돌과 균열을 방지하는 효과를 갖는다. 펭수의 과감한 선택들이 대부 이러한 ‘가면’이 가져다 준 관리 가능한 정체성의 기회로부터 나온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익명의 공간에 숨은 개인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솔직한 발화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펭수는 가면이 주는 안전함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마음에 담고 있으나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다수의 발화를 대신 해낼 수 있다. 그렇기에, 다시 ‘펭수는 펭수’라는 명제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선택된 정체성으로서 하나의 ‘가면’이 현실에 공존하는 것을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한편으론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부여될 것을 기대하고 열망한다. 가면 쓴 개인을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기회를 얻은 이에게 자신의 열망을 투사하는 대중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학력, 세대, 직업 등 몇 가지 정체성의 표지를 확인해야, 즉 ‘가면을 벗겨야’ 상대를 대할 수 있는 이들에겐 불편한 일이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코드를 통해 자신이 받아들여지길 기대하며, 그 코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익숙한 이들에겐 반가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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