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모든 걸 바쳤던 뉴욕생활,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과 공허에... (kakao 1boon)
우연히 방문한 식당 베이스이즈나이스에 들어선 순간, 밖과 전혀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느린 음악 소리와 오픈 키친에서 새어나오는 도마 소리, 차분하고 은은한 빛으로 가득 찬 곳에 앉아있으니 말의 속도도 느려지고, 큰 목소리도 작게 변했다.
예쁘기도 했지만, 늘 먹던 채소의 맛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특별한 한 끼였다. 그래서인지 집에 돌아와서도 오래 여운이 남았다. 느린 음악 소리와 오픈 키친에서 새어나오는 도마 소리, 그리고 차분하고 은은한 빛으로 가득 찬 곳에 앉아있으니 말의 속도도 느려지고, 큰 목소리도 작게 변했다.
참 오랜만에 천천히 재료의 맛과 식감을 느끼면서 먹었구나 싶어서 바삐 살던 나에게 근사한 선물을 해준 기분이었다. 채식 식당 '베이스이즈나이스'의 장진아 대표를 만나보았다.
거의 모든 메뉴가 채소 위주로 구성된 '베이스이즈나이스'의 음식. 계란 등 동물성 재료를 완전히 제외하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제철 채소가 주인공인 밥상을 맛볼 수 있다.
Q. 베이스이즈나이스는 어떤 곳인가요?
A. 복작복작한 마포역을 지나면 나오는 조용한 도화동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이에요. 제철 채소를 베이스로 하는, 간결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꾸리고 있습니다.
Q. 채소 요리를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A. 식탁에 올라오는 채소를 한 번 생각해보세요. 늘 똑같이 소비되고 있지 않나요? 시금치는 데친 뒤 참기름에 무쳐나오고, 우엉은 물컹한 식감의 간장조림으로 늘 먹곤 하죠.
사실 채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맛이 있어요. 사람들이 채소 본연의 맛과 식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철 채소를 주인공으로 한 밥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 고향이 제주도인데, 제주는 밭이 비옥해요. 그 덕에 어릴 적부터 정말 맛있는 채소들을 먹고 자랐고, 그게 몸에 기억되어 있는 것 같아요.
Q. 예전에 뉴욕에 계셨다던데…
A. 뉴욕에서 10년 동안 푸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많은 레스토랑 브랜드를 기획했어요. 무엇보다 좋아하던 일이었고, 그랬기에 정말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첫 기획부터 완성까지 했던 큰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게 바로 뉴욕의 한식당 ‘허네임이즈한(Her Name is Han)’이었어요. 공간 디자인부터 메뉴 개발, 스태프 관리까지, 9개월 동안 저 스스로를 '갈아넣었다' 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모든 힘을 쏟았어요.
오픈한 지 4주 만에 줄이 섰고, 좋은 리뷰들도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내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난 뒤 왠지 모를 공허함이 지속되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방전됐는데, 이게 며칠 쉰다고 해서 회복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심리상담사를 찾아갔어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며 내가 겪었던 정신적 고통이 출산하며 겪는 육체적 고통과 비슷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Q. 심리상담을 받기 이전의 장진아와 이후의 장진아는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A. 그땐 막연하게 ‘내가 괜찮은 건가?’ 싶어서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심리상담은 살면서 내가 나에게 해준 제일 좋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전 제가 정말 건강하고,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뭘 갖고 싶은지, 남이 뭘 원하는지는 잘 알면서, 정작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는 몰랐던 거죠. 심리상담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진짜 모습들을 알게 되었어요.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프로젝트가 끝난 후 남은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한건 '비움'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생활에 여백을 주면서 나만의 속도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장사도 잘되는데, 매일 열어주세요’라고 하시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 문을 여는 지금의 속도가 저에게 맞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