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제도 바깥, 쓰레기 ‘낚아채는’ 노인들 (2021.04.05) | 이로운넷
| [인터뷰] ‘가난의 문법’ 저자 소준철 작가
| 재활용품 수거 노인의 삶 연구...“가난은 구조화됐다”
| 재활용 정책, 플랫폼, 소비자에 의해 유지되는 생태계“
| 지원 있지만 효과적이지 않아”
윤영자는 일흔 여섯이다.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다. 남편은 아프다. 연금·주택은 없다. 여섯 자매를 낳았지만 그들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윤영자는 가게 사무일을 전전하다가 남편과 중매 결혼했다. 남편이 일하면 윤영자는 가사를 맡았다. 그게 당연한 때였다. 남편은 ‘큰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났다. 윤영자는 다시 동네 복덕방에서 사무 일을 하며 3년을 버텼다. 남편이 돌아와 큰돈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망하기 일쑤였다. 다시 윤영자가 생계를 책임졌다. 구리무(크림)를 떼다 방문 판매하는 일이었다. 88올림픽 전후로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다. 남편은 택시를 몰았고 윤영자의 가게도 잘됐다. 단독주택도 구입했다. 아이들은 대학에 갔다. 윤영자는 다 잘되겠다고 생각했다.
IMF가 닥치며 국면이 달라졌다. 첫 사위가 은행에서 잘렸고 아들은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막내딸은 이혼했다. 자식들은 사업대금을 달라고 성화였다. 가계를 줄이고 집을 팔았는데 자식들의 사업은 대형마트·프랜차이즈 등에 치여 금세 문을 닫았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기대를 무색하게 했다. 재기 불능의 지경까지 몰아갔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이 나온다고 해서 구청을 찾아갔다. 부양의무자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속이 쓰렸다. 속이 쓰려도 살아야 했기에 폐지 줍는 일을 시작했다. 일흔 여섯의 노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와 같은 소일거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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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일하고 많이 가난한 노인
노인은 가난하다. 통계청의 ‘2020 고령자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43.8%다.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이들은 일해도 가난하다. 65~69세의 고용률은 45.5%다.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 번째다. 70~74세 노인도 3명 중 1명(33%)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준철 작가는 일하는 노인 중 재활용품 수거 여성에 주목했다. 그나마 있는 노인 일자리에서 숙련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 쌓은 기존 경력을 이어가거나, 이어가지 못하더라도 경비직, 건설·기계업, 운전·운송업종 등에 있다. 여성은 다르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청소와 가사도우미, 조리업 정도다. “전후 세대 여성 노인들의 태반이 가사만 도맡았다. 우리 사회는 그런 식의 가부장제 생계 모델로 구성돼왔다. 직업의 기회를 받은 경험이 적은 이들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소준철 작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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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는 플랫폼과 소비자에 의해 유지된다”
90년대 중반까지 쓰레기 처리는 ‘넝마주이(폐품을 모아 고물상에 파는 이)’의 일이었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생기며 국가가 재활용 산업에 개입했다. 도시 곳곳에 쓰레기통이 놓였다. 쓰레기 배출 장소가 지정됐으며, 쓰레기차와 청소부가 정해진 시간마다 거리를 돌았다. 공공은 자원순환 정책을 펼치며 쓰레기통을 여는 사람이 ‘수거 업체’이기만을 바랐다.
넝마주이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원순환 정책은 아파트와 공동주택, 사업장이 밀집한 공간에서만 기능했다. 제도는 좁은 골목에까지 진입하지 못했다. 단독주택·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공간에서 쓰레기는 방치됐다. 넝마주이는 그대로 노인에게 물려졌다.
이 생태계는 좀 더 복잡하게 얽혀있다. 소준철 작가는 “정부 자원순환체계의 빈틈, 플랫폼, 소비자가 ‘폐지수거노인’이 존재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배달과 온라인 시장의 활성화·코로나19로 쓰레기 배출량은 훨씬 늘었다. 소비자들은 ‘분리수거’를 하고 쓰레기를 밖으로 내놓으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기술적 진보, 거기서 편의를 누리는 소비자 역시 이 생태계의 유지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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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 능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화’ 된 가난
윤영자는 가상의 인물이다. 소준철 작가는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들을 취재하며 그들의 생애를 한데 그러모았다. 그는 책에서 “70대 중반 여성의 평균적 존재를 구상하려는 시도”라며 “이들의 개인적인 사연을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끔 흐트러트릴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가난한 노인세대가 지닌 공통의 맥락이 윤영자의 삶을 통해 읽힌다. 그는 가난했지만 일하며 버텼고, 경제 호황기를 맞아 중산층으로 진입한다. 그러나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더 가난해진다.
윤영자의 몰락은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자식에게 재산을 나눠줘서 발생한 당위’가 아니다. 소준철 작가는 “말하자면 복지나 안전망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윤영자의 가난은 불운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구조화된 것”이라 설명했다. 즉, 생애 주기, 배제된 안전망(사회보험)이 노인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95년 이후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우선 가족에게 구제받고, 가족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을 때 복지가 나서는 형국이다.” 소준철 작가의 말이다. 그가 말한 가족주의란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컫는다. 부양의무자는 국민기초생활제도에서 기초수급자로 지정받을 때 충족해야 할 조건으로, 자녀·부모의 소득 및 재산이 일정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복지는 자녀가 있으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윤영자의 사례는 그렇지 않음을 증명한다. 개인의 개별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라는 문제제기가 거세지만, 완전 폐지는 아직 요원하다. 소준철 작가는 복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자격’을 선별해서 이뤄지는 복지가 제대로된 복지일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실정에 맞춰야 하지 않나. 누구나 (복지를)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재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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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라기 주며 ‘안전한 지원’이라는 사회
50여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재활용품 수거인에 대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원사업을 펼친다. 조례 내용은 대부분 유사하다. 실태조사를 벌이고, 안전도구를 제공하며 예방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거다.
“효과적이지 않다” 소준철 작가가 말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안전도구는 야광조끼와 호루라기다. 예방 교육은 동사무소 직원이 접촉한 10여명의 노인들 대상으로만 이뤄진다. 소준철 작가는 현황을 파악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통사고에 노출되는 재활용품 수거 노인의 숫자를 줄이려면 차라리 방지턱을 설치하는 게 효과적이다. 골목에서 야광조끼나 호루라기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싶다면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형태가 낫다. 지금 있는 지원은 실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나마 서울시는 ‘재활용 정거장’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고정된 장소에 쓰레기를 배출하도록 유도하고, 정거장의 관리자로 재활용 수거 노인을 고용한다는 내용이다. 2019년 기준 총 1만45개의 정거장이 있다. 소준철 작가는 테두리 바깥의 노동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도였기에 타 지자체의 지원과 다르다고 평가했다.
박성빈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