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그린마케팅’도 경계해야 한다. 나투라프로젝트 운영자 신지혜씨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을 앞세운 물건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권현우씨(36)는 지난 주말 인스타그램에 ‘#플로깅’ ‘#줍깅’이라는 태그를 달고 “오늘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쓰레기를 주웠다”는 글을 썼다. 권씨가 올린 사진은 농심 로고가 찍힌 ‘새참컵면’. 1985년에 나온 컵라면 용기다. 그는 “플라스틱은 정말 안 썩는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돼 무서웠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플로깅’으로 검색되는 게시물은 3만2000개가 넘는다. ‘줍깅’으로 검색되는 게시물은 8000여개다. 그 외에도 줍깅챌린지, 플로깅챌린지, 플로깅백, 쓰줍, 에코산행 등의 태그를 단 게시물이 많이 보인다. 같이 플로깅을 할 사람을 모집하는 게시물도 있다. 대체 플로깅, 줍깅이 뭘까.
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plocka upp(pick up)’과 조깅(jogging)을 합친 단어다. 최근 한국에서는 줍기와 조깅을 합친 ‘줍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 외에도 산 청소를 병행하는 등산인 ‘클린 산행’, 해변을 청소하는 ‘클린 비치’, 심지어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수중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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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준비물 없이 할 수 있어
플로깅에는 큰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다. 권씨는 주말이면 목장갑과 다회용 봉지만 들고 집을 나선다. 그 외에도 쓰레기를 주울 수 있는 집게, 마실 물이나 음료가 담긴 텀블러, 땀을 닦을 수 있는 손수건 등이면 충분하다. 다만 풀숲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어 얇은 긴 팔이나 긴바지를 입는 게 적절하다.
플로깅이나 줍깅을 단순히 ‘쓰레기 줍기’로 표현하지 않는 건 쓰레기를 주우면서 운동을 한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실제 플로깅은 쓰레기를 주울 때 다리를 구부리며 자연스럽게 스쾃동작으로 연결할 수 있어 일반 조깅이나 등산보다 운동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에서는 플로깅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일본은 ‘스포고미(Spogomi)’를 2020년 도쿄올림픽 비공식종목으로 채택했다. 스포고미는 스포츠와 고미(ごみ·쓰레기)의 합성어다. 정해진 구역 내에서 제한 시간 내에 많은 쓰레기를 줍는 게 규칙이다. 캔처럼 무거운 것보다 담배꽁초처럼 작고 가벼운 쓰레기의 점수가 높다.
버려지는 쓰레기가 많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플로깅을 하는 이들은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코리아의 박현선 대표는 수중 청소를 하기 위해 다이빙을 배우고 자격증을 땄다. 수중 청소를 시작한 날, 박 대표가 놀란 것은 쓰레기 때문이 아니었다. 쓰레기가 많을 거라고는 예상은 했으나 쓰레기‘밖에’ 없을 줄은 몰랐다. 폐어구와 쓰레기 등으로 원래 살던 생물들이 떠난 것이다.
어떤 지역은 누가 쓸고 간 것처럼 평평했다. 박 대표는 저인망(트롤) 어업으로 인한 지형 변화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저인망 어업은 2~10㎞ 정도 길이의 거대한 그물을 바다 밑바닥까지 펼쳐 끌고 다니면서 물고기를 남김없이 잡아 올리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패류의 서식지도 훼손된다.
직장인 손모씨(28)는 플로깅을 하면서 산행 리본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나무에 달린 산행 리본은 등산로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너무 많이 달리면 나무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심지어 나무에 못을 박거나 철사로 리본을 고정하는 경우도 있다.
손씨는 “서울 인근이나 유명한 산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플라스틱 트리’가 많다”며 “산행 리본이 이정표가 아니라 산악회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것 같다”며 ‘흔적 남기지 않기’를 강조했다. 흔적 남기지 않기(Leave No Trace)는 1970년대 미국 환경보호 캠페인에서 등장한 구호다.
최근에는 함께 플로깅을 하는 단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단법인 김제동과어깨동무는 매달 플로깅을 진행한다. 가족 단위나 교사와 학생 등의 참가자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플로깅 참가자에게 폐현수막으로 만든 ‘줍줍가방’을 제공한다. 가방은 온라인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
시셰퍼드코리아는 2017년부터 해변 청소, 수중 청소를 하고 있다. 해변 청소는 매달 신청을 받고 있으며, 수중 청소는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 있어 다이빙팀 9명이 진행한다. 박현선 대표는 “관광객이 많은 해변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거의 매일 청소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해변 위주로 간다”고 말했다.
‘자연과 함께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의 커뮤니티 나투라프로젝트에서도 플로깅, 클린 산행, 야외 요가 등의 활동을 함께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비대면으로 플로깅을 진행하기도 한다. 각자의 지역에서 주운 다음 온라인에서 후기를 나누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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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쓰레기 ‘덜’ 생산하는 구조로 가야
플로깅의 인기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개인이 하는 플로깅, 해변 청소, 수중 청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계속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또 버려지기 때문이다. 결국은 쓰레기 생산 자체를 줄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시셰퍼드코리아가 수중 청소를 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것 중 하나가 폐그물이지만 그대로 두고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물이 크고 무거워 다이버 한명의 부력으로는 끌어올릴 수 없어서다. 박현선 대표는 “여전히 버려지는 그물이 많다. 어구실명제나 어구보증금제 도입을 통한 정부의 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승헌 김제동과어깨동무 사무국장도 “처음부터 쓰레기를 덜 ‘생산’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쓰레기를 주워도 정부의 규제를 통해 기업이 변하지 않는다면 한계가 있다”며 “플라스틱의 종류나 색깔만 통일해도 지금보다 재활용이 훨씬 쉬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린마케팅’도 경계해야 한다. 나투라프로젝트 운영자 신지혜씨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을 앞세운 물건들이 많이 나온다. 이때 봐야 할 중요한 기준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인지’ 여부”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자체가 ‘반환경적’이기 때문이다.
플로깅을 하는 사람들은 거창한 이유를 내세우지 않았다. 채호석 시셰퍼드코리아 다이빙팀장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바다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수중 청소에 나섰다고 했다. 등산과 야외 요가를 즐기는 손모씨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휴양·치유를 목적으로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번 여름에는 자연을 찾아 플로깅을 해보면 어떨까.
이하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