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사막에 농장을 판 ‘엔씽’의 꿈, “화성에도 채소를” (2021.05.18) | kakao 1b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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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사막에 농장을 판 ‘엔씽’의 꿈, “화성에도 채소를” (2021.05.18) | kakao 1boon

지역혁신경제연대 0 1993

“인류가 화성에 가면 거기에 농장을 짓는 게 꿈이에요. 말도 안 되게 들릴 수 있지만, 사막에서도 채소를 키워냈잖아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스타트업의 역할이죠.”


엔씽은 컨테이너에 ‘농장’을 담아 판다. 이 농장에는 계절이 없다. 흙도, 농약도 없다. 재배작물을 키우는 외부환경은 자체 OS(Operating System·운영체제)가 알아서 조절한다. 광합성은 LED(유기발광다이오드)의 몫이다. 블록처럼 농장을 쌓아 올려 확장할 수도 있다. 이른바 ‘FaaP(Farm as a Product·제품형 농장)’로, 농장을 규격화해 대량생산하는 개념을 고안했다. 이 아이디어로 엔씽은 작년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박람회 CES2020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도 농장을 수출했다. 창업 7년차에 이룬 성과다.


지난달 22일 본사에서 만난 김혜연 엔씽 대표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글로벌’을 외치던 전세계가 지금은 ‘지역화’를 말하고 있다. 봉쇄로 인해 물류길이 제한되면서 식량안보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면서 “엔씽에겐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장은 일종의 데이터센터”라며 “지역마다 리전(Region·복수의 데이터센터 묶음)을 지어 네트워크 연결을 촘촘히 엮는 것처럼, 전세계 도시에 농장을 세워 기후·지역과 관계없이 ‘신선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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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농장으로 만들기까지


전자공학과 출신인 김혜연 대표의 주특기는 홈페이지 제작이었다.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외삼촌을 도와 우즈베키스탄에 토마토농장을 만들면서 창업의 실마리를 얻었다. 2013년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 화분’을 개발, 이듬해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다음 단계는 비닐하우스였다. 2016년 1652㎡(약 500평)를 임대해 딸기농장을 운영했다. 센서를 달고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딸기를 키웠다. 데이터도 모았다. 순항하는 듯 보였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비가 오는데 빛이 들게 할 수는 없더라고요. 외부영향을 완벽히 차단하고 재배환경을 통제할 수 있어야 했어요.” 그가 찾은 답은 컨테이너였다.


엔씽은 모듈형 수직농장 ‘큐브’를 개발했다. 날씨와 관계없이 수경재배로 작물을 기를 수 있다. 각 모듈은 출입·재배·출하 등 역할을 분담한다. 공간이 쪼개진 덕에 병충해가 발생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블록’처럼 수직으로 쌓아 올리거나 병렬로 이어 붙일 수 있어 확장성도 좋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은 최대 100배 높고, 물 사용량은 98%나 적다. 신선도·품질·수량 등이 일정하다. 전통 농업이 가지고 있던 불확실성을 최대한 걷어낸 것이다. 김 대표는 “컨테이너에 조성하는 모듈형 수직농장을 만든 것은 최초”라며 “막상 논리는 쉽고 단순한데, 생각을 해내기까지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직농장은 식량자급률이 낮은 국가에게는 긴요한 모델이다. 특히 중동전역은 기후 특성상 대부분의 먹거리를 해외서 사들여왔다. 그나마도 ‘신선채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관기간이 짧아 주변국에서 수입해도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중국 등 전세계 스마트팜(farm·농장)기업들이 중동에 눈독을 들여온 이유다. 엔씽은 이 틈을 비집고 UAE 아부다비에 자리를 잡았다. 60도 이상 고온을 기록하는 여름 내 적상추, 프릴리스, 그린글레이스 등 샐러드 채소를 키워냈다. 재배된 작물은 현지 호텔·레스토랑·마트 등 10여곳에 공급했다. UAE는 전체 국토 면적의 80%가 사막지대다. 농지면적은 0.4%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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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친 지구촌, 수직농장에 열린 기회


호소식이 잇따랐다. 작년 1월 CES 최고혁신상 수상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데 이어 2월에는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불리는 독일 ‘아이에프(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건축디자인부문 본상을 차지했다. 해외 진출에 탄력이 붙을 무렵,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사업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시장의 기회는 커졌다. 코로나로 물류대란이 일어나면서 각국이 ‘식량안보’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자원사용량을 효율적으로 절감하는 기업에 자본이 돌기 시작했다. 스마트팜 시장의 성장시계도 빨라졌다.


일례로 UAE는 정부차원에서 ‘지속가능한 국가 농업 시스템(NSSA)’을 발표, 농업분야의 인력을 매년 5%씩 확대하고 관개용수 연간 15% 절감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식량수입기금 조성을 비롯해 농업개발기금(ADF), 국영 곡물회사 등을 통해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추세다. 싱가포르는 2030년까지 식량자급률을 3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김 대표는 “기후변화·코로나 등으로 유럽·미국 등 강대국까지 환경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게 되면서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자본도 움직이고 있다”면서 “중동·싱가포르 등 자국 내 (농산물)생산을 늘리려는 지역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중동을 ‘채소수출국’으로 만드는 것. 김 대표는 “최소한 생산량의 30%를 생산할 수 있는 농장을 수출하고 싶다. 60%, 100%까지 (생산량을) 끌어올리면 의미 있을 것”이라며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했던 사막에서 이를 현실로 바꾸었듯 10년이 지나면 채소수출국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또 “서울 등 대도시인들은 식량이 부족하지 않지만 뒤에서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먹거리가) 공급된다. 기후 등 외부요인에 따라 농산물 수급은 변화를 겪는다”면서 “백(Back)단을 바꾸면 환경도, 산업도 달라진다. 채소 공급의 백단을 바꿔 일상을 ‘신선하게’ 바꿔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는 외형을 확장하는 데 주력한다. 일반과의 접점을 넓히고자 도산공원 인근에는 쇼룸 ‘식물성’도 열었다. 채소가 주인공인 카페다. 신선채소나 수경재배 키트도 구입할 수 있다. 해외 진출은 단계적으로 전개한다. 농업의 특성상 지역이나 국가 수를 늘리는 ‘양적 성장’보다는 우수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해서다. 우선 이달 UAE 사리야 그룹과 계약을 맺고 300만달러 규모의 큐브를 구축하기로 했다. 올해 말까지 수직농장을 추가 건설할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동남아시아 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굵직한 목표도 있다. 인류가 화성에 갈 때 엔씽은 화성으로 농장을 보낼 계획이다. 인류의 먹거리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포부다. 화분을 개발하던 창업 초기부터 김 대표는 이 같은 꿈을 공공연히 말해왔다. 당시에는 황당한 농담으로 듣는 이들이 많았다. 화분을 농장으로 키워 사막에 진출한 지금은 기대의 목소리가 더 크다.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는 밭을 일구고 살아간단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농사를 지어 첫 수확을 해야 땅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봤다고도 하는데요. 사막 유목민이었던 중동인들이 채소를 키워 먹게 되면, 진정한 의미의 ‘정착’을 실현하게 되는 거지요. 사막이 아니라 어디서든, 화성에 가서도 사람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회사를 꼭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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